
11일간의 마법 같은 여정의 모로코 여행
평소 여행지를 고를 때면 구글맵을 켜고 지구본을 빙글빙글 돌리는 버릇이 있다. 어느 날 지중해 건너 아프리카 북서쪽에 자리한 모로코에 시선이 멈췄다. 지중해와 대서양을 모두 품은 나라, 사하라 사막의 끝자락, 이슬람 문화와 아프리카, 유럽, 중동의 문화가 뒤섞인 곳. 그렇게 시작된 호기심은 결국 11일간의 여행으로 이어졌다. 2023년 봄, 나는 단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아프리카 대륙을 향해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기에 오르기까지의 준비
여행을 결심하고 가장 먼저 마주한 고민은 루트였다. 이 곳은 생각보다 넓고 다양한 풍경을 품고 있어서 단기간에 모든 곳을 둘러보기는 불가능하다. 수도 라바트, 경제 중심지 카사블랑카, 전통 도시 마라케시와 페스, 사하라 사막으로 가는 관문 메르주가, 그리고 SNS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블루시티 셰프샤우엔까지... 취향과 일정에 맞춰 선택해야 했다.
11일이라는 시간이 있었기에 나는 욕심을 내서 여러 도시를 연결하는 루트를 짰다. 카사블랑카-라바트-페스-셰프샤우엔-메르주가(사하라 사막)-마라케시-에사우이라-카사블랑카 순으로 원을 그리는 루트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무모했던 선택이었지만, 덕분에 다채로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비자는 한국인에게 면제되어 있어 여권만 있으면 입국할 수 있었다. 항공권은 카타르항공을 이용했는데, 도하에서 경유하는 노선이었다. 직항이 없어 아쉬웠지만, 경유 시간을 활용해 도하 공항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모로코로 향했다. 여행 시기는 4월 중순으로 여행하기 가장 좋은 시기 중 하나였다. 한여름에는 내륙과 사막의 기온이 40도를 넘나들지만, 봄과 가을에는 대체로 쾌적한 날씨를 즐길 수 있다.
카사블랑카, 영화 속 도시의 실체
첫 도시는 카사블랑카였다. 영화 '카사블랑카'로 유명해진 이 도시는 상상과 달리 현대적인 모습이었다. 모하메드 5세 공항에 도착해 처음 느낀 것은 습한 공기와 뜨거운 햇살이었다. 공항에서 시내로 향하는 기차를 타면서 창밖으로 본 풍경은 중동과 지중해, 그리고 아프리카가 뒤섞인 독특한 분위기였다.
카사블랑카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하산 2세 모스크였다. 대서양을 바라보며 우뚝 선 이 거대한 모스크는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모스크로, 그 웅장함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무슬림이 아니어도 정해진 시간에 가이드 투어를 통해 내부 관람이 가능했다. 천장까지 뻗은 기둥들, 정교한 모자이크 타일, 그리고 햇빛이 쏟아지는 실내 분수는 압도적인 아름다움을 자랑했다.
"카사블랑카에서는 하루만 머물러도 충분하다"는 여행자들의 조언이 이해됐다. 하산 2세 모스크와 모하메드 5세 광장을 제외하면 특별한 볼거리보다는 현대적인 상업 도시의 모습이 강했다. 영화 '카사블랑카'의 배경이 된 릭스 카페(Rick's Café)는 실제로 영화 촬영지가 아니라 영화에서 영감을 받아 2004년에 문을 연 곳이었다. 그래도 1940년대 분위기를 재현한 인테리어와 피아노 연주는 영화 속 한 장면에 있는 듯한 기분을 선사했다.
시간이 멈춘 미로 같은 구시가지 페스
카사블랑카에서 기차를 타고 도착한 페스는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페스는 이 곳에서 가장 오래된 왕조 도시 중 하나로, 특히 페스 엘 발리(Fes el-Bali)라 불리는 구시가지는 세계 최대의 보행자 전용 미로와 같았다. 9,000개가 넘는 좁은 골목길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어 지도 앱도 무용지물이었다. 첫날 호텔을 찾아가는 것조차 일대 모험이었다.
페스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중세 시대 그대로 보존된 듯한 생활 방식이었다. 구시가지에서는 차량 대신 당나귀가 화물을 나르고, 수백 년 전 방식 그대로 가죽을 염색하고, 도자기를 굽고, 직물을 짜는 장인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특히 페스의 심볼이라 할 수 있는 가죽 염색 공방 '샤우아라(Chouara) 탠너리'는 강렬한 경험이었다. 석회와 비둘기 배설물, 다양한 천연 염료로 가죽을 염색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악취는 코를 찌르지만, 테라스에서 내려다본 형형색색의 염색 통은 마치 팔레트 같은 아름다움을 선사했다.
페스에서의 숙소는 전통 가옥을 개조한 리아드(Riad)였다. 좁은 골목을 지나 평범해 보이는 문을 열고 들어가면 마치 오아시스 같은 안뜰과 정교한 장식의 방이 나타나는 반전이 매력적이었다. 리아드 주인이 직접 내려준 민트티와 달콤한 모로코 쿠키를 먹으며 안뜰에서 쉬는 시간은 여행의 소소한 행복이었다.
메르주가와 사하라 사막
이번 여행의 백미는 단연 사하라 사막이었다. 페스에서 메르주가까지는 한나절이 넘는 버스 여정이었지만, 창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은 지루할 틈이 없었다. 중앙아틀라스산맥을 넘어가며 보는 풍경은 초록의 들판에서 시작해 점차 붉은빛 사막으로 변해갔다. 어느새 길가에는 낙타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었고, 지평선에는 끝없는 모래언덕이 보이기 시작했다.
메르주가는 사하라 사막 투어의 출발점으로, 작은 마을이지만 여행자들로 활기찬 곳이었다. 사막 투어는 보통 낙타를 타고 모래언덕을 넘어 사막 한가운데 위치한 베르베르족 캠프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일정이었다. 처음 낙타에 올라탔을 때의 불안함은 이내 사라졌고, 줄지어 사막을 걷는 낙타들의 행렬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사하라 사막의 일몰은 평생 잊지 못할 광경이었다. 붉게 물든 하늘과 금빛으로 빛나는 모래언덕, 그리고 점점 짙어지는 주황빛 그라데이션은 어떤 카메라도 담아낼 수 없는 아름다움이었다. 캠프에 도착한 후에는 베르베르족 가이드들이 준비한 타진 요리로 저녁을 먹고, 모닥불 주위에 모여 북소리에 맞춰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시간을 가졌다.
사막의 밤은 상상 이상으로 추웠지만, 그만큼 별은 선명했다. 도시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수많은 별들과 은하수가 머리 위에 펼쳐졌다. 텐트에서의 하룻밤은 불편했지만, 새벽에 일어나 본 사막 일출은 그 모든 불편함을 잊게 했다. 어둠 속에서 점차 모습을 드러내는 사막의 풍경은 신비로움 그 자체였다.
인스타그램 속 그 파란 마을인 블루시티 셰프 샤우엔
사하라 사막 체험 후 긴 이동 끝에 도착한 셰프샤우엔은 '블루시티'라는 별명답게 온통 파란색으로 칠해진 독특한 마을이었다. 리프 산맥 사이에 위치한 이 작은 도시는 최근 SNS를 통해 유명해져 세계 각국의 여행자들로 북적였지만, 여전히 지방 특유의 여유와 한적함을 간직하고 있었다.
셰프샤우엔의 파란색은 단순한 관광 상품이 아닌 역사적 배경이 있다. 15세기 이슬람과 유대교 박해를 피해 이주한 유대인들이 신성한 색인 파란색으로 집을 칠한 것이 시초라고 한다. 미로 같은 골목길을 따라 걸으며 마주치는 다양한 파란색 벽면과 문, 계단은 마치 동화 속 세계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셰프샤우엔에서는 특별한 관광 일정 없이 그저 골목길을 산책하며 카메라에 담고, 작은 카페에 앉아 민트티를 마시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마을 중심에 있는 우타 엘함맘 광장에서는 현지인들과 여행자들이 어우러져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저녁이면 광장의 레스토랑들이 활기를 띠고, 산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도시를 감싸는 경험은 소박하지만 특별한 추억이 되었다.
천일야화의 도시 마라케시
여행의 마지막 주요 도시는 '붉은 도시' 마라케시였다. 도시 전체가 붉은 흙벽돌로 지어져 있어 일몰 무렵이면 온 도시가 황금빛으로 물드는 광경은 압도적이었다. 마라케시는 모로코에서 가장 활기차고 다채로운 도시로,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곳이었다.
마라케시의 중심인 제마 엘프나 광장은 낮과 밤의 모습이 완전히 달랐다. 낮에는 뱀 조련사, 원숭이 조련사, 헤나 아티스트 등 다양한 거리 공연가들이 관광객의 눈길을 끌었고, 밤이 되면 광장은 야외 식당으로 변모했다. 수십 개의 푸드스톨이 설치되고 연기와 음식 냄새, 흥정하는 소리로 가득 찬 광장은 마치 '천일야화'의 한 장면 같았다.
마라케시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곳은 바히아 궁전이었다. 19세기에 지어진 이 궁전은 전통 건축의 정수를 보여주었다. 정교한 스투코 장식, 세다르우드로 만든 천장, 화려한 타일 모자이크가 어우러진 내부는 한 폭의 그림 같았다. 또한 이브 생 로랑이 사랑했다는 마조렐 정원은 카오스 같은 도시 속 평온한 오아시스였다.
마라케시의 수크(시장)는 페스보다 더 상업적이었지만, 그만큼 다양한 물건을 구경하고 구매할 수 있었다. 양피지 램프, 베르베르족 러그, 컬러풀한 바구니와 가죽 슬리퍼까지, 수공예품들은 하나하나가 예술 작품 같았다. 물론 물건을 살 때마다 벌어지는 흥정은 여전히 긴장되는 경험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도 여행의 묘미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지인에게서 배운 진짜 팁
무엇을, 어디서 먹을까?
여행 중 매 끼니가 새로운 발견이었다. 대표적인 요리는 '타진'으로, 원뿔 모양의 특별한 그릇에 천천히 조리하는 스튜 요리다. 양고기, 소고기, 닭고기, 생선 등 다양한 재료로 만들어지며, 말린 과일과 견과류가 더해져 단맛과 짠맛의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타진과 함께 '쿠스쿠스'도 꼭 맛봐야 할 음식이다. 찐 세몰리나 가루 위에 야채와 고기 스튜를 얹어 먹는 이 요리는 보통 금요일 점심에 가족들이 모여 먹는 전통 음식이다.
식사 전후로 민트티는 빼놓을 수 없는 문화다. 푸른 민트잎과 엄청난 양의 설탕이 들어간 이 차는 하루에도 수차례 마시게 되는데, 처음에는 너무 달다 싶었지만 어느새 그 단맛에 중독되었다. 거리 음식으로는 크레페인 '므스멘', 꿀에 적신 페이스트리 '셰바키야', 그리고 다양한 올리브와 절인 채소를 맛볼 수 있었다.
현지 식당 중에서는 현지인들로 붐비는 작은 식당이 관광객이 많은 곳보다 맛있고 저렴했다. 특히 메뉴판이 없이 그날 만드는 음식만 제공하는 '가족식당'을 추천한다. 페스의 한 골목에서 우연히 들어간 이런 식당에서 먹은 양고기 타진은 여행 중 최고의 식사였다. 현지인 추천으로 알게 된 팁 하나는, 타진을 주문할 때는 30분 이상 기다려야 제대로 된 맛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빠르게 나오는 타진은 대부분 미리 조리해놓은 것이라 맛이 떨어진다.
흥정의 기술과 추천 기념품
쇼핑은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자 도전이다. 수크에서 쇼핑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흥정이다. 처음 제시된 가격의 30-40% 정도가 실제 가격이라고 보면 된다. 흥정을 시작할 때는 상인이 부른 가격의 절반 정도를 제시하고, 거기서부터 조금씩 올리는 방식이 효과적이다. 너무 낮은 가격을 고집하기보다는 서로 만족할 수 있는 지점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리아드 주인이 알려준 비법은 "웃으면서 단호하게" 가격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기념품으로는 아르간 오일이 유명하다. 남서부 지역에서만 자라는 아르간 나무에서 추출한 이 오일은 요리용과 화장품용으로 구분된다. 구매할 때는 여성 협동조합에서 직접 만든 제품을 선택하면 품질이 보장되고 현지 여성들의 경제적 자립도 돕게 된다. 그 외에도 베르베르족의 전통 카펫, 컬러풀한 바구니, 세라믹 그릇, 가죽 제품 등이 인기 있는 기념품이다.
쇼핑 중 한 가지 주의할 점은 '가이드'를 자처하는 현지인들이다. 특히 페스나 마라케시의 미로 같은 골목에서 길을 안내해주겠다고 접근하는 이들은 대부분 상점으로 데려가 물건을 사게 하려는 의도가 있다. 명확하게 거절하거나, 정말 길을 잃었다면 처음부터 팁을 얼마나 줄 것인지 이야기하는 것이 좋다.
여행 실전 Q&A: 내가 직접 겪은 경험에서
Q: 정말 위험한가요?
A: 여행 전 주변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기본적인 여행 상식만 지키면 충분히 안전하다. 물론 대도시의 번화가에서는 소매치기나 바가지요금과 같은 주의사항이 있지만, 이는 세계 어느 관광지에서나 마찬가지다. 여성 혼자 여행하는 경우 불필요한 시선이나 말을 듣는 경우가 있을 수 있으니, 현지 문화를 존중하는 복장을 하고 단호하게 대응하는 것이 좋다. 내 경우에는 현지 친구의 조언대로 결혼반지를 끼고 다녔더니 훨씬 편하게 여행할 수 있었다.
Q: 언어 소통은 어떻게 하나요?
A: 공식 언어는 아랍어와 베르베르어지만, 프랑스어가 널리 통용된다. 관광지에서는 영어로도 기본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하지만, 간단한 아랍어 인사말(살람 알라이쿰)과 감사 표현(슈크란)을 알아두면 현지인들의 호감을 살 수 있다. 구글 번역기의 오프라인 모드를 활용하면 더욱 편리하다. 특히 택시나 상점에서 가격을 물을 때는 종이에 숫자를 적어 보여주는 방법이 오해를 줄일 수 있다.
Q: 어떻게 이동하는 것이 좋을까요?
A: 도시 간 이동은 기차와 CTM이라는 장거리 버스가 편리하다. 카사블랑카-라바트-페스를 잇는 노선은 기차가 발달해 있으며, 1등석을 이용하면 쾌적하게 여행할 수 있다. 기차가 닿지 않는 곳은 CTM 버스를 이용하면 되는데, 인기 노선은 일찍 매진되므로 미리 예약하는 것이 좋다. 도시 내에서는 쁘띠 택시(도시마다 색이 다른 소형 택시)가 저렴하고 편리하다. 다만 미터기를 켜지 않는 경우가 많으니, 탑승 전 가격을 흥정해야 한다. 우버나 그랩 같은 차량 공유 서비스는 공식적으로 운영되지 않는다.
Q: 여행의 베스트 시즌은 언제인가요?
A: 봄(3-5월)과 가을(9-11월)이 여행하기 가장 좋은 시기다. 여름은 내륙 지역과 사막의 기온이 40도 이상으로 올라가 관광하기 힘들고, 겨울은 산악 지역과 사막의 밤이 영하로 내려가 춥다. 내가 방문한 4월은 날씨가 완벽했지만, 성수기라 관광지가 붐볐다. 조금 더 여유롭게 여행하고 싶다면 5월 말이나 9월 초가 좋을 것 같다. 또한 라마단 기간에는 많은 상점과 식당이 낮에 문을 닫기도 하니 여행 계획 시 참고해야 한다.
11일간의 여정을 마치며
카사블랑카 공항을 떠나기 전, 마지막 민트티를 마시며 지난 11일을 돌아보았다. 출발 전 가졌던 이미지와 실제 경험한 모로코는 많이 달랐다. 영화나 사진으로 접했던 이국적인 모습도 스크린으로 본 것보다 실제 두 눈으로 보니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굉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