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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보) 애즈원 이민 , 자택에서 별세

by 정보수사대 2025. 8.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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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즈원 이민 갑작스러운 별세
속보) 애즈원 이민 , 자택에서 별세

애즈원 이민, 그녀의 음악과 삶을 추모하며

애즈원 이민의 갑작스러운 이별

2025년 8월 5일, 한국 R&B 음악의 전설적인 듀오 애즈원의 멤버 이민(본명 이민영, 향년 46세)이 자택에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는 비보가 전해졌다. 그녀의 소속사 브랜뉴뮤직은 8월 6일 공식 입장을 통해 이민이 전날 저녁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으며, 현재 경찰이 사망 경위를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소속사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지나친 억측을 삼가 달라”고 당부하며 팬들과 대중에게 신중한 태도를 요청했다. 이민의 남편이 퇴근 후 그녀를 발견하고 신고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 소식은 음악계와 팬들에게 큰 충격을 안겼다.

이민의 사망 소식은 특히 그녀가 최근까지 활발히 활동하며 팬들과 소통해왔기 때문에 더욱 충격적이었다. 지난 6월 신곡 ‘축하해 생일’을 발표하고, 5월에는 KBS 2TV ‘더 시즌즈 - 박보검의 칸타빌레’에 출연해 오랜만에 방송 무대에 섰던 그녀였다. 이 방송에서 이민은 밝은 미소와 여전한 가창력으로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며, 동료 멤버 크리스탈과 함께 애즈원의 대표곡 ‘원하고 원망하죠’를 열창하며 추억을 되살렸다. 그녀의 갑작스러운 이별은 팬들뿐만 아니라 동료 아티스트들에게도 깊은 슬픔을 남겼다.

“정말 긍정적인 친구였다. 오랜만에 컴백해서 즐겁게 활동했는데 믿어지지 않는다.” - 이민의 오랜 지인

애즈원의 시작과 이민의 음악 여정

애즈원은 1999년 이민과 크리스탈(본명 채다희)로 구성된 여성 R&B 듀오로, 데뷔 앨범 ‘데이 바이 데이(Day By Day)’를 통해 가요계에 화려하게 등장했다. 한국계 미국인인 이민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성장하며 한인 교회 성가대에서 크리스탈과 처음 만났다. 두 사람은 작곡가 신재홍에 의해 발탁되어 애즈원을 결성했으며, 독특한 음색과 세련된 창법으로 2000년대 초반 한국 R&B 붐을 선도했다.

이민의 보컬은 애즈원의 음악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그녀의 맑고 여린 음색은 곡의 감정을 깊이 전달하며, 특히 애드리브와 마무리 허밍에서 독보적인 매력을 발산했다. 이는 ‘원하고 원망하죠’, ‘천만에요’, ‘너만은 모르길’, ‘미안해야 하는 거니’와 같은 히트곡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 음색은 1990년대 미국 R&B 가수들을 연상시키며, 국내에서는 유일무이한 색채로 사랑받았다. 한 지인은 그녀의 목소리를 “거짓말 안 하고 자넷 잭슨과 거의 똑같다”고 평하기도 했다.

애즈원의 데뷔곡 ‘데이 바이 데이’는 세련된 멜로디와 감미로운 하모니로 큰 인기를 끌었으며, 이어 2001년 2집 앨범 ‘천만에요’의 타이틀곡 ‘원하고 원망하죠’는 애즈원을 대표하는 곡으로 자리 잡았다. 이 곡은 이별의 아픔을 담은 가사와 이민의 애절한 보컬이 어우러져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었다. 이후 ‘미스터 에이-조’ 등 연이은 히트곡으로 애즈원은 2000년대 초반 한국 R&B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민의 삶과 최근 활동

1978년생인 이민은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생후 3개월 만에 미국으로 이민 가서 자랐다. 그녀는 미국 LA의 한인 교회 성가대에서 크리스탈과 함께 노래하며 음악적 재능을 키웠다. 애즈원으로 데뷔한 후 그녀는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활발히 활동했으며, 2013년에는 하와이에서 2세 연상의 한국인 회사원과 비공개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 후에도 음악 활동을 이어가며 팬들과의 약속을 지켰다.

애즈원은 2017년 싱글 ‘잠시만 안녕’을 끝으로 잠시 활동을 중단했지만, 2019년 ‘애써’로 화려하게 컴백했다. 2025년에는 ‘스틸 마이 베이비’와 ‘축하해 생일’을 연이어 발표하며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특히 ‘박보검의 칸타빌레’ 출연은 약 12년 만의 완전체 방송 무대로 화제를 모았다. 이민은 이 방송에서 박보검에게 팬심을 드러내며 “너무 예쁘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고, 크리스탈과 함께 고등학교 시절부터 이어진 우정을 회고하며 팬들에게 따뜻한 추억을 선사했다.

이민은 음악 활동뿐만 아니라 음악 강사로도 활동하며 성실한 삶을 살았다. 지인들은 그녀를 “긍정적이고 성실한 사람”으로 기억하며, 최근까지도 활기차게 활동하던 그녀의 갑작스러운 이별에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한 지인은 “지난주에도 만났다. 정말 성실히 사는 친구였다”고 회고하며 그녀의 열정적인 삶을 전했다.

팬들과 동료들의 애도

이민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미국에 거주 중이던 크리스탈은 급히 한국으로 귀국했다. 크리스탈은 비보를 접하고 깊은 슬픔에 빠진 것으로 알려졌으며, 그녀의 귀국은 이민과의 오랜 우정과 애즈원의 특별한 인연을 다시금 떠올리게 했다. 팬들 역시 소셜 미디어를 통해 애도를 표하며 애즈원의 음악이 담고 있는 추억을 공유했다. 한 팬은 “칸타빌레에서 본 게 엊그제인데 믿어지지 않는다”며 슬픔을 드러냈다.

동료 아티스트들도 이민의 떠남을 애도했다. 작곡가 윤일상은 “언제나 유일무이한 목소리”라며 그녀의 보컬을 추모했고, 가수 김현성은 “넌 참 좋은 사람이었다. 연락하고 싶었는데 주저 말았어야 했다”고 후회 섞인 메시지를 남겼다. 이들의 메시지는 이민이 음악계에 남긴 깊은 영향을 보여준다.

“2001년에 나왔던 ‘원하고 원망하죠’는 애즈원을 생각하면 가장 떠오르는 노래다.” - 이민, ‘박보검의 칸타빌레’ 방송에서

애즈원 이민의 음악적 유산

애즈원 이민의 음악은 단순한 노래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녀의 목소리는 2000년대 초반 한국 대중음악이 팝과 R&B의 경계를 넘나들며 새로운 감성을 탐구하던 시기를 상징한다. ‘원하고 원망하죠’는 이별의 아픔과 사랑의 복잡한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하며 세대를 초월해 사랑받았다. 이 곡은 오늘날까지도 다양한 아티스트들에 의해 커버되며 그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다.

이민의 독특한 음색은 애즈원의 음악을 특별하게 만들었다. 그녀의 보컬은 강렬함보다는 부드러움과 깊이로 승부했으며, 이는 한국 R&B 씬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확보하게 했다. 특히 곡의 마무리에서 그녀가 선보인 애드리브는 듣는 이들에게 깊은 여운을 남겼다. 이는 ‘천만에요’와 ‘미안해야 하는 거니’에서도 두드러지며, 그녀의 음악이 단순한 대중음악을 넘어 감정의 전달자로 기능했음을 보여준다.

애즈원의 음악은 단순히 히트곡의 집합이 아니라, 당시 한국 음악 시장에서 R&B라는 장르를 대중화하는 데 기여했다. 이민과 크리스탈의 하모니는 세련된 팝 사운드와 한국적인 감성을 조화롭게 융합하며, 많은 후배 아티스트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그녀들의 음악은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의 청춘을 대변하며, 그 시절을 살아낸 이들에게는 특별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이민을 기억하며

이민의 갑작스러운 이별은 많은 이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지만, 그녀가 남긴 음악과 추억은 영원히 살아 숨 쉴 것이다. 애즈원의 노래는 라디오, 스트리밍 플랫폼, 그리고 팬들의 플레이리스트를 통해 계속해서 울려 퍼질 것이다. 그녀의 목소리는 사랑, 이별, 그리고 삶의 다양한 순간들을 담아내며, 듣는 이들에게 위로와 공감을 전한다.

소속사는 아직 장례 절차와 빈소 마련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발표하지 않았으며, 경찰 조사 결과가 나오는 대로 추가 정보를 제공할 예정이다. 팬들은 이민의 마지막 무대였던 ‘박보검의 칸타빌레’ 영상을 다시 찾아보며 그녀의 밝은 미소와 따뜻한 목소리를 추억하고 있다. 이 영상은 유튜브에서 270만 조회수를 기록하며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민의 삶은 음악을 통해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고, 그녀의 떠남은 그 감동을 더욱 깊이 새기게 한다. 그녀가 사랑했던 노래와 팬들을 위해 헌신했던 시간은 결코 잊히지 않을 것이다. 애즈원 이민, 그녀의 음악과 삶을 영원히 기억하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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